마지막(?) 3·1운동 - 양사면 철산리 만세시위
"조선독립만세! 슬프도다, 슬프도다!"
1920년 음력 7월 15일,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 사는 두 청년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 주인공은 오용진(16세)과 임두엽(20세).
3월 1일을 기점으로 불타오른 전국적인 만세시위 열기가 식은지 1년이 넘은 시기였다.
이 두 젊은 청년은 왜 이렇게 뒤늦게 또 한번 만세시위를 추진한 것일까.
독립운동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이 때가 경술국치 10주년이 되었을 즈음이었고,
10주년을 맞이해서 뭔가를 일으켜보자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문서에 기입한 내용은 이렇다.
우리 조선 동포는 이 글을 보라. 애통한 마음은 누구나 있다. 이 마음이 없는 자는 새나 짐승과 다름이 없다. 애국심을 모르는가.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에 두 태양이 없고 백성게게 두 임금이 없다"고 하였다. 무엇 때문에 그 임금을 섬기는가. 아아! 철산리 300호 중 이와 같은 광고 1장 없구나.! 음 8월 7일에 만세를 부르지 않는자는 새나 짐승과 다름이 없다. |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독려보다는 협박에 가깝다. 이 날 만세시위하러 안나오면 짐승과 다를바 없는자라니.
하지만 실상 많은 3·1운동 만세시위가 이러한 '참여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 같은' 강한 압박감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도 많기 때문에,
위 내용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일을 꾸민 두 청년 그리고 이에 합세한 황준실이라는 청년까지 세 사람은 모두 3·1운동으로 벌어진 만세시위 전체를 고려할때 상당히 젊은 주동자라는 것이다.
나는 이 젊은 독립운동가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이런 모의를 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더 이상 남아있는 사료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들의 마음을 상상으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참고자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사료집 5: 삼일운동 재판기록, 333~334쪽.
국내 독립운동 및 국가수호 사적지, 옛 양사면사무소 터 3·1운동 만세시위지, 독립기념관, http://sajeok.i815.or.kr/i815/view_region/1685/page/1/sfl/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