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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과알못이다.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이어지는 내 공부이력에 수학이나 과학은 없었다. 어쩌면 거기에 관심을 가질 기회도 없었다. 학교에서 이미 한눈 팔지 말라고 공부해야할 영역에 딱 선을그어줬으니까. 문과라는.
그렇게 문과공부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렇게 문(文)과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사고하다보면 내 상상력이 문(門) 안에 갇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과학을 만날 수 밖에 없었나 보다. 가끔씩 교양 과학 서적과 강의를 접하면서 위대한 과학자라 된 것처럼, 문지기를 뛰어넘을 때는 문과 공부에 느낄 수 없는 신선함과 즐거움이 있었다. 내게 과학은 문(文)과라는 문(門)지기로부터 벗어나 도달할 수 있는 자유롭고 넓은 상상의 도피처였다.
그런데 『김상욱의 과학공부』를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과학을 공부할 때면 재미와 신선함만큼이나 크게 다가오는 감정이 또 있다. 그건 '위로'다. 왜 과학공부를 하면 위로가 될까, 그 이유는 아직까지 나도 잘 모르겠다. 현실 세계에 얽힌 수많은 문제가 머릿속을 헤매고 다닐때, 이것들을 잠시 접어두고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공간의 휘어짐', '확률에 따라 존재하는 양자의 세상'..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있으면 왠지모르게 현실의 고민들은 사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 경이로움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나는 혹은 우리는, 신비하고 경이로운 것에서 위로를 느끼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로렌스 곤잘레스가 쓴 『생존』이라는 책에서도 삶과 죽음을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고 했었지. 과학도 인문학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이로움을 준다. 또 현실 세계에 갇혀있는 우리의 마음을 넓힘으로서 살아가는데 힘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이 책은 과학 입문자가 봐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쉽게 쓰여졌지만 그렇다고 내용을 모두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한편에는 즐거움, 신선함, 경이로움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미적분으로부터 출발하는 복잡한 수식과 개념들이 있다. 마치 인문학의 한편에는 인간의 마음과 그에따라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생소한 철학과 사회과학적 용어들이 있는 것처럼. 공부는 이 양자 중에 내가 좋아하는 어느 한편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하는 그 한편의 호기심에서 시작하여야 하지만, 결국에는 다소 지루해보이는 다른 한편 또한 처음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어야 진정한 공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보다 깊은 과학적 개념들로 안내해주는 『김상욱의 과학공부』는 과학공부를 시작하는데 매우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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